잊혀진 항일무장 투쟁의 전개
1. 서론 – 역사의 그늘 속 무장 항쟁을 다시 보다
우리는 일본의 식민통치에 맞선 ‘항일무장투쟁’ 하면 봉오동·청산리 전투, 의열단 투쟁 정도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민족의 독립의지는 만주, 연해주, 중국 관내 등 국경과 이념, 지역을 넘어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현장에서 뜨겁게 타올랐다. 이 글에서는 교과서에 자주 실리지 않는 ‘잊혀진 무장투쟁’의 다양하고 역동적인 실상을 살펴본다.
2. 3·1운동 이후의 변화와 무장투쟁의 확산
만주·연해주: 새로운 전쟁의 무대
1919년 3·1운동은 비폭력적 만세운동의 성격이 강했지만, 운동 이후 만주 지역으로 물러난 독립군들은 실제 무장투쟁의 최전선이 되었다.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등은 한인 무장단체를 이끌며 유격전·대규모 전투를 전개했다.
봉오동·청산리 전투(1920년)
일본군을 상대로 승전, 한민족 독립전쟁의 최고 수훈으로 기록되었지만, 이후 일본의 대대적인 토벌과 간도참변으로 독립군은 소련 연해주와 중국 내륙으로 피신해야 했다.
분열과 새로운 연대
1921년 자유시참변 등 독립군 내부 분열과 소련 공산당의 개입으로 많은 부대가 와해되지만, 각지에서 작은 단위의 유격대, 의열단, 비밀결사 등으로 변주되어 투쟁은 계속되었다.
3. 잊혀진 무장단체와 투쟁 사건들
대한통의부, 정의부, 신민부의 활약
1920년대 초, 만주 일대에서는 대한통의부, 정의부, 신민부 등 각종 단체들이 독립군 기지 건설과 군자금 모집, 국경을 넘나드는 무장공격을 수행했다.
이 단체들은 지역주민과 연계해 행정·교육·자치단까지 맡기도 했으나, 내분과 일제·만주국의 집중 토벌로 많은 희생과 해체 과정을 겪었다.
소규모 유격전과 적기단, 탈취사건
1930년대 들어 전면전이 어려워지자 독립군들은 소규모 유격부대, 적기단(赤旗團) 등으로 전환해 철도, 통신시설 파괴, 군수품 운송차량 습격 등 일제 후방 깊숙이 파고드는 분산전을 전개했다.
대표적 사건으로는 ‘십오만원 탈취사건’ 등 무장자금 활동이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진행되었다.
의열단과 민간 테러투쟁
의열단(단장 김원봉)은 한인 비밀결사 조직으로, 단장 암살(조선총독·친일경찰), 요인 폭탄 투척, 기관파괴 등 의거를 강행했다. 이들의 투쟁은 ‘개인 또는 소수 결사에 의한 무장 직접행동’이라는 새로운 전법의 출현으로 평가받는다.
4. 1930~1940년대 만주와 조국광복회의 유산
한·중 연대와 동북항일연군
일제의 만주침략(1931년 만주사변) 이후 만주에서는 한인 독립군과 중국인 항일부대의 연대가 본격화되었다. 한민족 투사들은 중국공산군 산하 동북항일연군 등에 참여해 공동작전을 펼쳤고, 이는 민족운동의 국제연대라는 의의를 남겼다.
조선의용대·광복군 결성
1930년대 말 중국관내, 특히 남경과 충칭 일대에서는 조선의용대(김원봉 계열), 한국광복군(임시정부 산하) 등 새로운 정규군 편제가 이루어졌다. 이들은 중일전쟁·태평양전쟁 기간 연합군과 손잡고 인도, 미얀마 전선 참전, 국내진공작전 준비 등 이후 해방의 밑거름이 되었다.
5. 잊혀진 투사와 독립전쟁의 대중성
다수의 무장투쟁은 철저히 대중 속에서 이루어졌다. 지역 농민, 청년, 학생, 여성까지 다양한 계층이 대의명분과 생존을 위해 스스로 무기를 들었다. 적의 보복과 내부 갈등, 국제적 고립 등 수많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약소 민족의 독립에 대한 집념으로 자신의 삶 전체를 불태웠다.
주요 물리투쟁 | 지역 | 조직/부대 | 특징 및 의의 |
봉오동전투 | 만주 | 대한독립군 외 | 대규모 승전, 무장투쟁의 상징 |
청산리전투 | 만주, 북간도 | 북로군정서, 대한독립군 | 조직적 연합·지구전, 일본군 격퇴 |
각종 유격전 | 만주·연해주 | 적기단 등 | 소규모 분산전, 개별테러, 후방 교란 |
의열단투쟁 | 본토·중국 | 의열단, 한인애국단 | 요인암살·시설폭파 등 직접행동 |
한중연대무장 | 만주·중국 | 동북항일연군 등 | 한·중 공동투쟁, 국제연대 경험 축적 |
6. 결론 – 잊힌 역사가 남긴 의미
잊혀진 항일무장투쟁은 거대한 승전 기록뿐 아니라, 이름 남지 않은 숱한 유격전, 무장 자금 모집, 작은 조직의 치열했던 하루하루 속에 존재했다. 이 투쟁들은 일제의 실질적 지배력 약화, 국제전선에서의 존재감 강화, 광복 이후 남북 현대사의 기반이 되는 정치사회적 경험 축적 등 수많은 결과를 남겼다.
오늘날 우리는 그 대의와 좌절, 그리고 ‘조용한 영웅들’의 역동이 지닌 의미를 되새겨, 역사가 단지 성공의 서사가 아니라 끊임없는 실험과 실패, 연대의 기록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한다.
‘잊혀진 항일무장투쟁’의 기억이야말로, 오늘의 새로운 도전에도 흔들림 없는 용기를 길러주는 우리의 자존이자, 역사의 바탕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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