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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우리역사 이야기

[역사 비화] 무령왕릉 발굴 현장에 나타난 '수유실', 그 뒤에 숨겨진 감동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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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비화] 무령왕릉 발굴 현장에 나타난 '수유실', 그 뒤에 숨겨진 감동 스토리

안녕하세요! 오늘은 교과서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하지만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아주 따뜻하게 장식했던 실화 한 토막을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충남 공주의 무령왕릉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화려한 금제 관장식, 석수(돌짐승), 아니면 도굴되지 않은 온전한 상태의 무덤?

물론 이 모든 것이 중요하지만, 이 위대한 발견의 현장에는 **'대한민국 1호 공공 수유실'**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특별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무령왕릉 발굴 현장에 나타난 '수유실', 그 뒤에 숨겨진 감동 스토리

1. 1971년 여름, 대한민국을 뒤흔든 대발견

1971년 7월,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배수구 공사를 하던 중 우연히 벽돌무덤 하나가 발견됩니다. 이것이 바로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과 왕비가 잠든 '무령왕릉'이었죠. 1,442년 동안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문이 열리자 전 국민의 관심이 공주로 쏠렸습니다.

당시 발굴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특종을 잡으려는 기자들과 구경하려는 인파가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었죠. 긴박하고 긴장감이 감도는 그 역사적 현장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2. 발굴 현장의 유일한 여성 학자와 갓난아기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의 막내 학예사였던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부인, 이난영 박사(당시 학예사)**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녀는 당시 국내 유일의 금석문 전문가였으며,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지석(무덤의 주인공을 기록한 돌)'을 판독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난영 박사에게 갓 태어난 지 100일도 안 된 아기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어린이집이나 돌봄 서비스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모유 수유를 해야 했던 그녀는 아기를 떼어놓고 공주까지 내려올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포대기에 아기를 업고 발굴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3. 무령왕릉 앞에 차려진 '임시 수유실'

엄격하고 권위적이었던 당시 분위기에서 아기를 업은 여성 학자의 등장은 파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발굴단장이었던 김원룡 박사를 비롯한 선배 학자들은 그녀를 내쫓는 대신 놀라운 결정을 내립니다.

"이 박사, 아기 밥은 먹여야지. 저기 천막 하나 비워줄 테니 거기서 아기를 돌보게나."

발굴 현장 한편에 아기를 위한 작은 천막이 쳐졌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고고학 발굴 현장 바로 옆에 **'임시 수유실'**이 마련된 것입니다. 이난영 박사는 아기에게 젖을 물린 뒤 다시 무덤 안으로 들어가 무령왕릉 지석의 글자를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갔습니다.

아기의 울음소리와 학자들의 탄성 소리가 뒤섞인 이 풍경은, 무령왕릉 발굴이 단순한 유물 찾기가 아니라 **'삶과 역사가 공존하는 현장'**이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되었습니다.

4. 이 비화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이 이야기가 단순히 '훈훈한 미담'을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전문성에 대한 존중: 당시 학계는 여성 학자의 전문성을 깊이 신뢰했습니다. 아기가 있다는 이유로 그녀를 배제하는 대신, 그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었습니다.
  • 공동체적 배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국가적인 대업을 수행하는 중에도 동료의 어려움을 함께 짊어진 학자들의 인본주의적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 역사의 인간미: 무령왕릉은 죽은 자의 공간이었지만, 그 입구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죽음과 삶, 과거와 현재가 교차했던 그 순간은 무령왕릉이 가진 또 다른 문화적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중학생 자녀와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만약 자녀와 함께 공주 무령왕릉을 방문하신다면, 전시된 금관만 보여주지 마시고 이 이야기를 꼭 들려주세요.

"얘야, 저 화려한 유물을 처음 발견했을 때 저 입구에는 너만 한 아기가 엄마 품에서 젖을 먹고 있었단다. 이 유물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건, 서로를 배려했던 따뜻한 마음들이 있었기 때문이야."

역사는 단순히 유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유물을 다루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과정입니다. 무령왕릉의 수유실 비화는 우리 아이들에게 실력에 대한 열정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두 가지 소중한 가치를 동시에 가르쳐줄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무령왕릉 발굴은 성급한 진행으로 인해 고고학계의 아픈 손가락으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도 빛났던 '수유실 비화'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진정한 역사의 품격입니다.

올겨울, 아이의 손을 잡고 백제의 숨결과 인간미가 살아있는 공주로 역사 여행을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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